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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Korea Expose | 
 요즘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고르자면 역시 남녀갈등과 이민자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남녀갈등은 인터넷상에서, 그리고 2,30대 사이에서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이슈다. 
 그런데 이 이슈가 단순히 인터넷 상으로만 한정되지 않고, 오프라인 시위로까지 확산이 되었다. 6월 9일에 열린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의 편파수사’에 대한 2차 시위에서는 주최측 추산 3만명, 경찰 추산으로는 1만 5천명이 참여하며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혜화역 시위에 맞추어, 남녀갈등의 양상 또한 더욱 거칠어졌다. 시위 반대자들은 시위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점들을 들며 시위 참여자들을 ‘상종 못할 인간 이하의 존재’ 정도로 취급하고 있고, 시위 옹호자들은 시위 반대자들을 ‘여성 인권에 X도 관심 없는 쓰레기 남성 우월주의자’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해볼 것은, 유독 이 문제에 대해 맹렬히 갈등하는 계층을 보면, 남성, 여성 불문하고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정도의 청년층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양성 평등에 관한 이슈가 이 나이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텐데, 왜 유독 남녀갈등 문제가 청년층에 집중되어 있는 것일까?
 소셜 미디어를 주로 이용하는 계층이라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의 미디어(TV, 신문 등)에서는 몇몇의 메이저 언론이 유통되는 정보들을 통제할 수 있었고, 이들은 모두 사회의 안정화를 위해 심한 자극이나 심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정제’해서 전달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정보, 날것의 진실과 날것의 불안감이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로 인해 진실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지만, 그 진실 이면의 공포에도 가까워졌다. 또한 진실이 아닌 정보도 진실처럼 유통시켜 사람들의 불안감을 매개로 이익을 창출하는 집단도 인터넷상에는 분명 존재하기에, 결과적으로 발전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환경은 희망보다는 불안감을 유통하기에 최적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안감이, 청년층이 남녀갈등의 주요계층으로 자리한 두 번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유행처럼 쓰였던 말로 N포 세대가 있다. 청년층들이 연애, 결혼, 출산, 취업 등등을 포기한다는 말이었는데, 사실 요즘에는 생각보다 안 쓰는 용어가 되었다. 요즘의 언론들은 청년층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무기력한 이미지가 아니라,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바라는 ‘전투적인’ 이미지로 묘사한다. 그러나 나는 이 ‘전투적인’ 양상이, 포기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N포 세대라는 것은 이른바 ‘성취 지위’를 적극적으로 획득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된다. 본인들이 노력해서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직장이나 결혼, 연애, 출산 등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뭐 경제, 사회, 문화의 측면에서 포기의 이유는 많겠지만,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울 정도로)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보자면, 사회가 다원화되고 각 학문이나 직업 분야들이 분화될수록, 성취 지위를 얻기 위해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특히나, 한국 사회는 특정 성취 지위의 획득 여부가 다른 성취 지위 획득에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다. 결혼도 스펙 따지는 시대라거나, 출산과 양육 비용의 부담이라거나, 경력직 선호 현상 같은 내용을 다룬 기사들은 몇 년째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한 편에서는 ‘젊은이, 타이어보다 싸다’ 라거나 ‘노오오오력이 부족하다’라는 등의, 농담만큼 가벼워진 불안감들이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성취 지위에 대한 과도한 압박과 불안감이 합쳐져, 포기라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녀갈등 이슈는, 그 포기라는 선택의 다음 단계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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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2018) | 
 야스차 뭉크는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성취 지위’와 ‘귀속 지위’에 관해서,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획득한 (직업, 가족구성원 등의) ‘성취 지위’보다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성별, 문화, 인종 등의) ‘귀속 지위’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물론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귀속 지위’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런 실패와 좌절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청년층은 본인들의 불안감의 원인을 본인들의 ‘귀속 지위’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혜화역 시위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시위의 참여자들은 모두 같은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다. 몰카 범죄나 성적 자유에 대한 불안감이 시작이었겠지만, 그 불안감이 페미니즘과 결합하고 인터넷 상으로 유통되는 각종 공격적 워딩들과 결합되면서 그 감정은 점점 분노에 가까워진다. 또한 그 불안감이 단순히 몰카 문제만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가 자신이 성취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에 있어서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사회 구조를 자신들의 귀속 지위와 적대되는 입장으로 이해하게 되고, ‘투쟁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한남충’, ‘자이루’, ‘재기해’ 등 시위에서 사용된 남성혐오적 단어들과 시위 현장 주변의 행인들에 대한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는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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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불법 촬영 편파 수사 비판하며 "한남충" "재기하라" "자이루"... 남성 조롱하는 혐오표현 구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366494 | 
 반면 남성들의 경우, 미투 운동부터 시작해 페미니즘이 부상하면서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았던 남성들이 순식간에 몰락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젠더 감수성’이니 ‘기울어진 운동장’ 등을 말하며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이 차별주의자나,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남성들 역시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결국은 역차별을 만들고, 본인이 사회에 나가서 성취 지위를 획득할 때 그 역차별이 본인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마찬가지의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불안감에 대한 일종의 방어 기제로써, 몇몇 남성들은 시위의 논리에 대해 공개적으로 동조하기도 하고, 몇몇은 시위자들을 향한 인신 공격성 발언이라든지, 여성 혐오적 발언(쿵쾅, 메퇘지 등) 등을 통해서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한다.
 정리하자면, 사회적 불안감이 축적된 2-30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라는 이론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경우에 따라서는 편파적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여성들이 느끼는 사회적 불안에 대해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나름대로 제시해준다. ‘네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 너는 사회에 의해 억압받고 있고, 그 억압 때문에 너의 자아실현이 방해받고 있어. 그러니까 이 망할 세상을 바꿔보자.’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정부도, 지역 사회도, 가정도, 인터넷 커뮤니티도 해소해주지 못한 청년층의 불안감을 페미니즘은 어느 정도 해소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청년층의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신뢰 대상이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고, 자신들의 불안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공 못하고 있는 국가와 지역 사회는 ‘헬조선’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남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하게도 페미니즘은 청년층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줄 실마리를 제공한다.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본인들의 실패나 불안감의 원인을 떠넘길 수 있는 좋은 구실이 생긴 셈이다. 그리고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남성들은 일종의 포퓰리즘으로써 페미니즘에 대한 무한 긍정의 입장을 취하고, 시위 현장의 진실을 외면하는 정부와 언론 기관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성들 역시 사회 구조가 자신들의 귀속 지위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으로 변해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헬조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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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시위니까 맘대로 찍어도 될까요?" 영상과 댓글 반응. https://www.youtube.com/watch?v=NNvOI9ONq1s | 
 그러니까 갈등의 양 끝단에서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는 두 집단은 사실상 같은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건 최근 이슈가 되었던 난민 문제를 통해 알 수 있다.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 500명에 대해서, 그렇게 으르렁대며 싸우던 남초 커뮤니티와 여초 커뮤니티는 의견 대통합을 이뤘다. 난민허가 결사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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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불법 난민과 관련된 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69548 | 
 사실 페미니즘 같은 경우는 일방적 권력 구조에 대해 반대하고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 확보 차원에서 논의되는 이론인데, 이런 페미니즘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여초 커뮤니티가, 대표적인 약자인 난민들에 대해서 이런 일관된 입장을 가지는 것은 좀 의아한 일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 이들의 행동을 ‘불안감’의 영역에서 살펴본다면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난민들은 항상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특히 청년층은, 난민들이 본인들이 살게 될 거주지와, 본인들의 일자리를 뺏어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결국 이들의 갈등은 지능과 이성의 부족, 혹은 혐오 감정에서 비롯된다기보다도,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로써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문제는, 우리는 이런 불안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는 정책, 경제, 심리학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고민해봐야겠지만, 나는 일단 게임에 대한 얘기를 하는 사람으로써, 불안감에 대해 얘기한 게임을 하나 소개해보려 한다.
 사실 게임 소개 하기 전에, 요즘의 사회 이슈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려고 했는데, 이런 이슈에 대해서 여러 글들을 찾아보고, 논문들을 찾아보며 정리하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글 두 개로 나누어 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정작 게임 소개는 다음 글에서 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정작 게임 소개는 다음 글에서 해야 될 것 같다...
 남녀갈등과 예멘 난민에 관한 분석에 관해서는 위에서 말한 <위험한 민주주의>와 슬로우뉴스 "문 앞에 선 포퓰리즘 : 혜화역 시위와 예멘 난민"(http://slownews.kr/70040) 이 글을 많이 참고했다. 이런 이슈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한 번쯤 읽으면 좋을 법한 글이다.
다음 글은 본격적으로 게임 <나이트 인 더 우즈(Night in the woods)>와 불안감에 대한 얘기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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