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보기에는 별거 아니었던 것에 인생을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
줄팽이를 돌리다가 위험하다고 금지되고,
공예하라고 만들어 놓은 학종이로 학종이 따기를 하다가 학종이도 금지되고,
포켓몬 왕딱지 배틀을 하다가 시끄럽다고 금지되고,
너도 나도 유희왕 카드를 사 모으다가 유희왕도 금지되고…
하지만 우리들은 답을 찾고는 했었다.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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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90년대생의 초등학생 시절을 요약하자면 위와 같이 ‘놀이에 대한 투쟁의
역사’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초등학교는 ‘친구와 만나는 놀이공간’이었고, 어른들에게
초등학교는 ‘배움의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금지의 공간’인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거나 허용될 수 있는 놀이를 새로 개척하였고, 어른들은
그런 개척 활동에 맞서 새로운 방화벽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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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포칼립스(Cardpocalypse)'. 에픽스토어 정가 25,000. 공식 한글 지원. |
오늘 소개할 게임 ‘카드포칼립스(Cardpocalypse)’는 바로 그 어린 시절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담고 있는 게임이다.
‘카드포칼립스(Cardpocalypse)’의 배경은 1990년대, 컴퓨터에 플로피 디스크를 끼우고, 잡지에서 게임 치트키를 알아내던
시절이다. 주인공 제스(Jess)는 새로운 초등학교에 전학을
가게 되는데, 그 학교에는 ‘파워 펫츠(Power Pets)’ 라는 어린이용 히어로 만화를 배경으로 한 트레이딩 카드 게임이 유행이다.
아니, 단지 ‘유행’이라는 단어로만은
부족한 수준이다. 이 학교의 많은 학생들은 이 ‘파워 펫츠’에 인생을 걸었으며, 자나 깨나 자신의 ‘덱(Deck)’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방식으로 게임에서 승리할지를 궁리한다. 또한 몇몇 수완 좋은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카드나 물건을 교환 시스템을 통해 얻는 일종의 ‘교환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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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랑도 교환할 수 있다. |
‘제스’ 역시 친구들의 도움으로 ‘파워 펫츠’를 배워나가게 되고, 카드들을 수집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 제스가 등교한 첫날에, 제스는 벌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파워 펫츠’ 게임 자체가 교내에서 금지되어버린다.
그러나 금지되었다고 포기할 친구들이 아니다. 비록 제스는 전교생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힌 상태가 되었지만, 학생들은 어른들 몰래 ‘파워 펫츠’ 게임을 계속한다. 그러던 중, 학교 전체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제스와 친구들은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조사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조금 특별한 ‘파워 펫츠’ 카드 배틀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카드배틀’ 게임으로써만 ‘카드포칼립스(Cardpocalypse)’를 본다면, 확실히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게임이다. 일단 배틀 방식 자체는 ‘하스스톤(Hearthstone)’의 그것과 많이 비슷하다. 다양한 영웅과 영웅마다의 특수 능력이 있고, 필드에 하수인을 소환하여 하수인끼리 필드싸움을 하고, 상대방 영웅의 체력을 깎는 방식이다.
다른 카드배틀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문’ 카드는 따로 없고, 대신 ‘뮤테이션’ 카드라는 것이 있다. ‘뮤테이션’ 카드는 ‘하스스톤’의 ‘비밀’, 혹은 ‘유희왕’에 ‘함정’ 카드 같은 것으로, 낼 때는 뒤집혀 있다가, 특정한 조건이 만족되면 발동하는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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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테이션' 카드 |
따라서 ‘카드포칼립스(Cardpocalypse)’의 배틀은 다른 카드 배틀 게임에 비해서는 꽤 단순하다. 또한 각 카드들이 가지고 있는 키워드들 또한 카드 배틀 장르를 많이 플레이해본 유저라면 굉장히 익숙한, 새로울 것 없는 키워드들이다.
그나마 배틀 측면에서 이 게임이 가지고 있는 차별점이라면 ‘메가(Mega) 변신’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영웅은 피가 절반 이하로 깎이면, 자동으로 변신하며 ‘메가’ 영웅이 된다. ‘메가’ 영웅은 기존 영웅과 다른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되며, 변신할 때 특수한 능력을 발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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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 영웅' 이 되면 능력이 바뀐다. |
즉, 다른 카드 배틀 게임을 많이 접해본 유저라면 ‘카드포칼립스(Cardpocalypse)’의 배틀은 상대적으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AI의 지능도 떨어지기 때문에 카드 배틀 특유의 긴장감이나 ‘뽕맛’은 타 게임에 비해서는 덜하다.
그러나, 이 게임을 어드벤쳐 게임으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주인공 Jess는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파워 펫츠’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조사하고, 해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학교 내의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서브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서브 퀘스트의 분량도 충분하고, 스토리도 유쾌하게 잘 풀어내어서 스토리를 진행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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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재밌는 서브퀘스트가 많다. |
또한 퀘스트를 진행할 때, 대화 선택지나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서 얻는 보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 때 놓친 보상들은 다시 받을 수 없다. 즉, 자신이 구성하려는 덱에 따라 신중히 주인공의 행동과 대화를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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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받으면 끝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인 ‘더즈데일 초등학교’도 하루하루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공간이 확장되고, 변화하며 탐험의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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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간인 '더즈데일 초등학교' |
또한 제스의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새로운 방식으로 카드와 덱이 강화되고, 카드 배틀의 새로운 규칙들이 추가된다. 즉, ‘카드포칼립스(Cardpocalypse)’의
덱 빌딩과 카드 배틀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게임 시스템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이야기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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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도 바꿀 수 있고, 아예 자신만의 카드를 만들 수도 있다. |
특히 카드 강화 방식 중 ‘스티커’ 시스템이 재밌는데, 이미 존재하는 카드 위에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서 카드 코스트를 낮추거나 스텟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키워드를 추가하는 등의 강화를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가며 자기들만의 규칙을 만들었던, 초등학생 시절의 아날로그적 놀이 방식을 잘 고증한 카드 강화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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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튼 쓸 수 있다고~' 식의 강화 |
정리하자면, ‘카드포칼립스(Cardpocalypse)’는 ‘카드 배틀’이라는 소재와 게임 시스템을 어드벤쳐 게임 장르에 기막히게 잘 녹여낸 게임이다. ‘카드 배틀’ 자체로만 보자면 ‘메가’한 재미를 선사하는 게임은 아니지만, ‘놀이에 대한 투쟁’의 역사로 점철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유쾌한 이야기를 담은, 훌륭한 어드벤쳐 게임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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