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인류가 또 망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말입니다. 사실 그동안 온갖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인류는 언제나, 다양한 방식으로 망해왔었습니다. 영화 <매드 맥스>부터 다양한 좀비 아포칼립스들, 게임 중에서는 <레이지>나 <폴아웃> 시리즈, 최근에는 <프로스트펑크>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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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추위 속에서 마을을 건설하는 "프로스트펑크(Frostpunk)" |
그만큼 ‘세기말’은 좋은 소재입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난관을 해결하며 성장하고, 적대자를 물리치는 인물들의 서사는 우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줍니다. 그 인물들의 서사를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들 때는 그 카타르시스가 배가 되겠죠. 그래서 수많은 게임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요소를 첨가하고, 플레이어를 극한의 상황 속에 몰아넣습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 영악하고 잔인한 적대자들, 배신과 사기 등... 그런 어려움들이 많아질수록 게임은 다채로워지고, 액션은 화려해지며 플레이어는 더 높은 차원의 도전과 더 깊은 선택의 고민을 강요받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런 세기말 게임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게임이 있습니다.
<파 : 론 세일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인사이드>, <림보>와 같은 형식의 플랫포머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에는 좀비가 없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무법자들도 없죠. 자원을 독점하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 기관도 없습니다. 배신자와 사기꾼들도 없고요. 대신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력자들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험난한 세상을 헤쳐갈 수 있는 주인공의 성장이나 스텟, 스킬 포인트, 멋있는 액션들도 없습니다.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인공과 엔진을 장착한 탈 것, 그리고 길에 널브러져 있는 잡동사니들만 있습니다.
“론 세일즈(Lone Sails)” 라는 제목에 걸맞게, 주인공은 ‘혼자서’, 한 때는 번영했을 문명의 잔해물들이 황량하게 펼쳐진 끝도 없이 넓은 세상을 헤쳐 나갑니다. 왜 인류는 자취를 감춘 것일까요? 이 세상에는 주인공 혼자 남은 것일까요? 게임은 그런 것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플레이어는 여행을 하다가 마주칠 수 있는 흔적들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강의 추리를 할 뿐이죠.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 게임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차량의 각 부품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연료는 어떤 걸 써야 되는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플레이어는 그 때 그 때 마주한 상황들을 알아서 파악하고 주변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 어려움을 알아서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탈것에 증기가 차면 증기를 빼 주고, 연료를 계속해서 공급해주고, 엔진이 멈추지 않게 계속 버튼을 눌러주면서, 연료가 없다면 직접 끈으로 차를 끌고 가기도 해야 합니다. 고장이 나면 수리도 해야 되고, 돛도 폈다가 접었다가 해야 되며 길이 막혀 있으면 어떻게든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이 게임은 별 거 없어보여도, 쉴 틈이 없습니다. 플레이어는 혼자서 끊임없이 탈 것과 주변 환경들을 살펴보며 환경의 변화에 재빠르게 대처해야 하죠.
그래서 플레이를 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이 게임의 숨겨진 적대자, 최종 보스가 누군지 알게 됩니다. 그건 외로움입니다. 수많은 게임들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환경을 다뤘어도, 그 환경 속의 외로움을 다룬 게임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른 생존자들이 있었고, 적들이나 괴물들, 하다 못해 게임의 기본적인 사항을 알려주는 로봇 가이드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주인공을 위협하는건 그를 둘러싼 요동치는 환경뿐이고, 그는 그 가운데 홀로 떨어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의미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파 : 론 세일즈>가 이런 외로움을 극대화시켜 플레이어를 심적으로 괴롭히는 게임은 아닙니다. 외로움은 적대자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힐링의 장치로서 역할 합니다. 미려한 배경 아트와 여행의 설렘을 표현하는 듯한 OST가 게임 내내 펼쳐지며 플레이어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가운데, 돛을 펼치고 규칙적인 엔진소리를 들으며 수많은 별들이 수놓아진 밤의 사막을 홀로 건너간다는 것 자체는 꽤나 멋진 경험으로써 다가옵니다. 그리고 가끔씩 여행하다보면 차의 부품이 업그레이드 될 때가 있는데, 업그레이드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꽤나 흐뭇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마치 홀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전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나 홀로 동떨어진 느낌,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 임기응변으로 난관을 해결하고 자신만의 보람을 찾아가는 과정까지.
<파 : 론 세일즈>가 화려하고 신나는 게임은 분명 아니지만, 수많은 화려함들에 둘러싸여 지쳐 있을 때, 한 번쯤 해보는 것도 괜찮은 게임인 것은 분명합니다. 단점이라면, 15,000원 이라는 가격에 비해서는 너무 짧은, 3시간 내외의 플레이타임을 들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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