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리뷰]“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Detroit : Become Human)”. 깊이보다는 넓이



<헤비 레인(Heavy rain)>, <비욘드 : 투 소울즈(Beyond: Two Souls)>의 제작사 퀀틱 드림(Quantic Dream)”에서 신작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을 내놓았습니다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Detroit: Become Human)>(이하 <디트로이트>)2038, 고도로 발달한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상당수를 대체한 사회를 그려냅니다. 상황의 심각성은 37.3%라는 어마어마한 실업률이 말해주죠. 그리고 위협을 느낀 인간들은 안드로이드를 사회에서 몰아내 자신의 위치를 찾고자 합니다. 안드로이드들이 받는 대우는 식민지 시대의 노예들이나, 인종차별이 행해졌던 시대의 유색인종이 받았던 대우와 유사합니다. 그들은 본인의 존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자신을 구매한 주인에 의해서만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궂은일을 다 하고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며몇몇 안드로이드는 동물원이나 놀이 공원에서 동물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매춘업소도 전부 안드로이드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사실 인간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대우일수도 있습니다그들은 원래 그런 목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었으니까요하나의 상품으로써그런데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그들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합니다플레이어는 카라코너마커스 이 세 안드로이드의 입장을 번갈아가며 플레이하면서그들이 처한 안드로이드와 인간사회의 문제를 플레이어의 방식에 맞게 풀어나갑니다.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에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면 바로 몰입일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세세한 디테일들을 전부 이해하고 대사도 하나하나 신중하게 읽으며, 자신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 플레이어는 게임 내내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게임을 훌륭하게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퍼즐 같은 요소들로 시청자의 주의를 끌 수 있는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디트로이트> 와 같은 게임은 오직 스토리로만, 플레이어의 집중을 다른 게임들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거든요.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트로이트>는 그것을 훌륭하게 해냅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이 플레이어를 <디트로이트>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듭니다일단 첫 번째는게임의 비주얼적인 요소입니다.

 


  높은 수준의 그래픽은 <디트로이트>가 구현하고 있는 세계를 현실감 있게 포착하며플레이어는 게임이 구현하는 세계에 감각적으로 몰입하게 됩니다게임은 배경이 되는 디트로이트의 미래적이면서도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냅니다먼지 덮인 공업 도시의 뒷골목에서 안드로이드들이 무표정으로 주차되어있고높은 실업률로 인해 거리 곳곳에 나와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 여기가 디트로이트구나라고 알 수 있게 되죠또한 캐릭터들의 움직임 또한 실제 배우를 통해 2년 가까이 모션 캡쳐를 하고 37,000개가 넘는 애니메이션을 추출해서 제작되어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 왠지 친숙하게 다가오는 장면들이 있는데, <디트로이트> 내에는 꽤나 많은 패러디, 혹은 오마주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장면들은 서사 외적으로도, 부가적인 즐거움을 주는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티첼리의 "지옥도" 중 일부

두 번째로는 게임의 넓이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 게임을 정말이지 넓습니다.’ 먼저 이 게임은 장르적으로 넓고,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넓습니다. 게임은 세 인물을 다루는데, 세 인물마다 각기 다른 장르의 서사, 그리고 게임이 펼쳐집니다. 모성애를 느끼게 되는 안드로이드 카라의 서사에서는 <라스트 오브 어스>같은 느낌을 주는 생존 게임의 과제들이 부여되고, 가족 드라마의 서사가 펼쳐집니다.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들을 이끌게 되는 마커스의 부분에서는 잠입, 파쿠르 액션의 진행방식과 히어로물의 서사가 펼쳐지죠.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안드로이드들을 수사하는 안드로이드 코너를 통해서는 추리, 퍼즐, 수사물의 즐거움을 줍니다. , 게임은 플레이어가 지루해질만 하면 장르적 전환과 변주를 거듭하며 플레이어를 다시 게임의 세계로 돌려놓습니다. 또한 후반으로 가면, 이 세 가지의 각기 다른 장르적 특징을 가진 캐릭터들의 서사가 연결점을 가지고 한데 모이며, 플레이어가 구성한 선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변해갑니다. 이 과정에서 장르들은 서로 섞이고 새롭게 재탄생되며, 플레이어는 다른 게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적 재미들을 찾아가게 됩니다.




또한 이 게임은 1천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부가적인 정보를 주는 상호작용에서부터, 앞으로의 서사 진행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선택까지. 또한 이 게임에는 게임 오버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어떤 선택으로 인해서 그 캐릭터가 죽어도 게임이 오버되지 않고, 그 죽음 자체가 하나의 분기가 되어 이후의 스토리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높은 집중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챕터 전체의 플로우차트가 나오면서, 플레이어는 그 선택이 그 뒤의 상황을 확실히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내가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디트로이트>는 이런 넓은 가능성을 통해서 선택하는 행위 자체의 재미를 증진시키고, ‘내가 직접 만드는 나만의 영화라는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장점을 충실히 살립니다.

그러나 이 넓이는 한 편으로는, <디트로이트>의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각 장르에는 그것에 맞는 게임 진행 방식이 필요합니다. <디트로이트>는 서사적 측면에 있어서는 각 장르의 재미를 그럭저럭 잘 살렸지만, 그 서사를 진행하기 위한 다양한 게임 방식을 녹여내지는 못합니다. 범인 추격도, 잠입 액션도, 아이 돌보기도 전부 QTE(Quick Time Event)입니다. 물론 QTE는 스토리 몰입에 방해가 안 되면서도 게임의 긴장감을 더해줄 수 있는,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에서는 최선의 조작 방식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르적 긴장감을 준다는 명목으로 너무 QTE가 남발되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QTE 남발 문제는 개발사의 전작 중 하나인 헤비 레인때부터 지적되어 온 문제입니다. <디트로이트>QTE는 분명 <헤비레인> 때보다는 개선되었지만, 특정 부분에서는 불필요한 부분까지 굳이 조작을 하게 만들어서 게임을 루즈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듭니다.



퀀틱 드림의 무안단물, QTE

또한 여러 장르와 인물들의 서사를 넘나들다 보니 인물들의 감정이나 상황, 서사의 전체적 깊이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전체적인 이야기에 있어서도 클리셰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나서 때로는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라는 게임의 중심 소재는 <아이로봇>, <블레이드러너 2049>, <휴먼스>, <웨스트월드> 등 그동안 수많은 매체에서 이야기된 소재입니다. 그럼에도 <디트로이트>는 수많은 매체에서 이야기된 그대로 안드로이드를 다룹니다. 게임에 앞서 공개된 4편의 트레일러를 통해서, <디트로이트가>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관계를 통해 인간 사회를 재조명하고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는 깊이 있는 게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몇몇 플레이어들은 결과물에 실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그래도 아직은, 좋은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깊이보다는 넓이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같은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인 개발사의 전작 <비욘드 : 투 소울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욘드><디트로이트>와는 정 반대의 지점에 위치한 게임입니다.
 <비욘드>는 주인공 조디 홈즈에이든의 서사에만 집중함으로써, 그들의 감정과 상황, 그리고 게임에서 그려내는 삶과 죽음의 경계라고 볼 수 있는 세계를 깊이 있고 확실하게 전달했습니다. 또한 그 세계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들도 어느 정도 던지고, 일정 수준의 철학적 깊이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비욘드>는 그만큼 플레이어가 체험할 수 있는 서사의 영역이 너무 좁았고 선형적이었으며, 선택의 폭 또한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랙티브 무비’가 줄 수 있는 게임의 재미가 반감되었고, 그 부분에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게임 <비욘드 : 투 소울즈(Beyond : Two Souls)>

 결국, 아무리 좋은 서사를 가지고 있더라도 게임에서는 상호작용의 재미가 동반되어야 그 서사가 제대로 전달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트로이트>는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으로써 확실히 재밌는게임입니다. 그리고 게임의 압도적인 넓이에서 비롯되는 이 게임의 재미는, 깊이를 일정 부분 포기함으로써 얻는 단점들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댓글 1개:

  1. 안드로이드들에 대한 대우가 인종차별처럼 느끼셨던 이유는 실제로 게임의 많은 부분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종차별의 이야기들을 모티브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라든지 남부의 흑인 노예들을 북부로 빼오는 지하철도 라고 불리던 조직의 이야기라든지 하는 것들을 게임 내에 적절히 녹여놨습니다(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3d4I7kYlWgI).

    그리고 저 또한 안드로이드를 주인공으로 한다길래 영화 같은 SF적인 고찰과 깊이를 기대했었는데, 정작 게임은 그런 부분이 많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아서 아쉽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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