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더스내치(Black mirror : Bandersnatch)> : 당신은 정말 올바른 선택을 하였습니까?

이 영화는 간혹 당신에게 질문들을 던질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최대 두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질 것입니다. 선택을 하는 것은 당신입니다. 마우스나 터치패드를 가까이 두고 계세요. 그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수락   /   거절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거절을 눌렀다.
 
그래도 영화는 시작됐다.


* 글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을 수 있음.

 사실 넷플릭스의 신작 <블랙미러 : 밴더스내치> 가 인터랙티브 무비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 걱정이 더 먼저 됐다. 인터랙티브 무비의 역사는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기대와 실망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밴더스내치>와 같은, 상호작용적인 서사 구조를 가진 영화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1992, 특수한 영화관에 가서 각자에게 지급된 조그만 리모컨으로 분기를 선택하는 방식의 영화였던 <I’m your man> 이라는 인터랙티브 필름을 포함하여, 영화의 서사에 관객을 참여 시키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그 시도는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I'm your man>(1992)

 영화에 있어서 선택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영상이 나오다가 선택의 순간이 올 때, 일차적으로 관객들은 몰입의 흐름이 끊기게 되고, 선택에 대한 고민은 이야기의 집중을 흐트러뜨렸다. 그렇게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래도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은 이제 영화보다는 게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헤비 레인>,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퀀틱 드림, <워킹 데드>의 텔테일 사 등이 발전된 그래픽과 게임 요소와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장르의 재미를 살린 작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실 요즘 우리는 인터랙티브 무비라는 장르명을 들으면, ‘무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스팀이 아니라 넷플릭스라고? ‘인터랙티브 무비가 정말 무비라고?

'Quantic Dream' 사의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2018)>

 주인공 스테판 버틀러1984년의 개발자다. 그는 밴더스내치라는, 분기식 서사 어드벤쳐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다. 관객(혹은 플레이어)은 몇 가지 선택을 통해서 그가 어떤 식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주변인들에게 어떤 행동을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주인공 '스테판 버틀러'

  넷플릭스에 <밴더스내치>1시간 30분의 분량으로 안내되어있다. , 적절한 선택을 통해 이야기가 무리없이 끝까지 진행된다면 1시간 30분 정도의 분량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분량을 지닌 엔딩은 5가지 정도가 있다. 그 분량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중간에 끝나게 되는 엔딩까지 포함한다면, <밴더스내치>에는 10가지가 넘는 엔딩이 있다. 만약 관객의 잘못된 선택으로 진행되는 도중에 결말을 맞는다면, 영화는 중요 분기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할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영상을 일시정지하면 이전 선택 모음이 활성화되어, 마음에 안드는 선택을 다시 할 수도 있다.

2가지 선택지. 1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사실 <밴더스내치>선택이 여타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 장르에서 보여줬던 선택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맞다. <밴더스내치>가 다른 인터랙티브 무비들과는 차별화된다거나,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확실히 넷플릭스라는 영상 전문 플랫폼에서 서비스하는 작품이다 보니, 다른 인터랙티브 무비들에 비해 영상과 선택의 순간이 매끄럽게 연결되고 선택의 순간에 몰입이 저하되는 것은 덜했다. 하지만 <밴더스내치>의 선택지들 역시 예측 가능한, 뻔한 수준으로 제시되는 경우도 많고, 명백한 정답과 오답이 있는 선택도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선택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고, 답답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 <밴더스내치> 역시 한정된 선택과 결과라는 점에서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나 딜레마 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오히려 <밴더스내치>에서는, 그런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한계나 딜레마가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한계나 딜레마 자체가 작품의 주제의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밴더스내치>의 선택지와 분기 시스템은 <워킹 데드><디트로이트>처럼 인터랙티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 선택의 즐거움을 경험시켜주려는 의도로 들어간 것이 아니다.
<밴더스내치>의 인터랙티브는  <밴더스내치>, 넘어서는 <블랙 미러> 시리즈 전체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도구' 로써 사용되었다.


특정 분기에서, 스테판은 이런 말을 한다.
게임은 유저가 자유롭게 선택을 한다는 환상을 줄 뿐, 사실 결말은 게임이 정한다.”

스테판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도, 스테판도, 스테판을 지켜보는 우리도 모두 환상에 빠져 있는 존재다.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게임을 홍보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유저가 직접 만들어내는 이야기, 유저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와 같은 말이다. 그러나 그 게임에서 출력되는 장면이나 결말들은 사실 유저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의해 사전에 분기식으로 짜여진 것들이다. 다만 게임은 연출을 통해 유저가 그 장면을 자유의지에 의해 만들었다는 환상을 심어줄 뿐이다. , 우리가 <밴더스내치>에서 아무리 다양한 선택을 한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밴더스내치>라는 프로그램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게임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날까?
 
블랙 미러는 4시즌동안 표현했던 주제는 단 하나다. 정보기술 발전의 이면. 그런 정보기술이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때 인류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가? 에 대한 상상력을 담은 SF 드라마다. , 블랙 미러는 계속해서 정보 기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가 왜 1984년이라는 과거의 게임 개발자 이야기를 했을까? 그것도 특별판으로?


<블랙미러 : 밴더스내치> 1984년의 게임 개발자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1984년은 빅 브라더의 해다. 모든 행동이 감시당하고,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수집되는 시간. 개인의 자유의지가 무시되고, 능동적인 선택을 할 수 없는 시간. 그래서인지 1984년의 주인공 스테판 버틀러는 본인 스스로 선택을 하지 못한 채, 컨텐츠를 보는 화면 밖의 유저에게 감시당하고, 특정 행동을 강요당한다. 스테판은 자신이 감시받고 특정 선택을 강요당한다는 것을 점차 깨닫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밴더스내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은 안 그래?

 우리는 빅 데이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거대 기업들은 빅 데이터를 수집해 우리들의 취향을 분석하고 특정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우리의 소비 기록과 온라인에서의 모든 행적은 기록으로 남는다.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일까? 정말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이,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해 능동적으로 내리는 선택들일까? 혹시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몇 개의 선택지 안에서 고민하면서, 능동적인 선택을 해왔다는 착각을 해 온 것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밴더스내치>의 결말들 역시 다른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 게임들의 결말들처럼, 왠지 모를 찝찝함을 남긴다. 그러나 두 찝찜함은 약간 종류가 다르다. 다른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들이 주는 찝찜함은 내가 원하는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말을 얻지 못한 데서 오는, 선택의 딜레마가 주는 특유의 찝찝함이다. 그러나 <밴더스내치>의 찝찝함은, 다른 <블랙 미러> 시리즈들처럼, 그 암울한 주제의식과 현재 우리의 상황을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오는 씁쓸한 뒷맛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밴더스내치>에서 경험한 선택의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애초에 <밴더스내치>는 선택의 즐거움을 선사해주기 위한 인터랙티브 무비가 아니다. <밴더스내치>는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으로 분기 시스템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인해 <밴더스내치>가 컨텐츠 소비자들에게 단순한 영화 이상의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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