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떤 게임이 큰 인기를 얻으면, 단순히 다른 게임 디자인에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아예 그 게임이 ‘장르화’가 되는 경우가 있다. ‘다크소울(Dark Souls, 2011)’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그 이후 만들어진 수많은 게임이 악의적인 맵 디자인과 스태미너 시스템, 치명적인 보스 패턴 등을 가져와 ‘소울-라이크(Soul-like)’를 표방한 것이 그 예다.
![]() |
<다크소울1(Dark souls)>. 2011 |
![]() |
<슬레이 더 스파이어(Slay the Spire)>. 2017 |
특히 ‘슬더스’는 상대적으로 화려한 액션이나 비주얼적인 요소가 없어도 유저들에게 전략적 즐거움과 위에서 말한 일명 ‘뽕맛’을 선사했기 때문에, 이런 ‘로그라이크 덱 빌딩’ 장르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슬더스 이후로 ‘Slay-like’ 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수많은 로그라이크 덱 빌딩 게임들이 나왔다. 몇몇은 새로운 게임적 요소를 발전시켜 좋은 평가를 들은 게임들도 있고, 몇몇은
그저 ‘슬더스’의 아류작 취급을 받는데서 그치기도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로노아크(2019)>, <Destiny Or Fate(2019)>, <네오버스(2019)>,
<One Step From Eden(2020)>
오늘 소개할 게임인 <몬스터 트레인(Monster Train)>도 이런 흐름을 따라 만들어진 로그라이크 덱 빌딩 게임이다.
![]() |
<몬스터 트레인(Monster Train)>. 2020. 스팀 정가 26,000원. |
일단 전체적인 게임 진행 방식 자체는 슬더스랑 비슷하다. 전투를 하면서 랜덤하게 카드 보상을 획득하고, 길을 선택해 강화나 유물 획득 등의 이벤트를 거치고, 그것을 바탕으로 덱을 만들어 나간다. 슬더스같이 카드를 다 써도 다시 버린 카드 더미에서 뽑을 카드 더미로 순환되는 방식이라 밸류가 낮은 기본 카드를 제거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순환이 된다고 해서 슬더스처럼
극단적으로 덱을 압축하여 한 턴에 카드를 무한정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즉발 드로우카드도
거의 없고, 곧 설명하겠지만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유닛(Unit)’ 시스템이기 때문에, 유닛 전투를 진행하지 않고 주문 카드로만
덱을 무한정 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막아두었다.
<몬스터 트레인>이 슬더스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전투 시스템이다. <몬스터 트레인>의 전투 지역은 총 4층으로 나누어져 있고, 내 유닛을 배치할 수 있는 구역은 1층에서 3층 사이다. 적들 역시 1층에서 3층 사이에서 나온다. 보통 보스전이나 특정한 도전이 아니면 1층부터 차례로 등장한다. 그리고 적과 내 유닛이 각자 한 턴씩 공격을 주고 받고, 살아 있는 적 유닛들은 2층으로 올라간다.
![]() |
<몬스터 트레인>의 전투 화면 |
이런 식으로 전투를 펼쳐 만약 적들이 4층으로 올라가면,
Pyre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만약 Pyre의
피가 0이 되면 패배하게 된다.
![]() |
최종층의 Pyre 역시 다른 유닛들처럼 생명력과 공격력이 있다. |
따라서 기본적으로 <몬스터 트레인>의 전투 방식은 기존에 봐 왔던 슬더스 방식의 전투, 즉 행동할 캐릭터가 정해져 있고 카드로 그 캐릭터의 행동을 컨트롤하여 이기는 방식의 전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전투할 필드에 하수인들을 소환하고, 각종 주문 카드와 유물로 하수인의 전투를 보조하는, <매직 더 개더링>이나 <하스스톤> 같은 클래식한 tcg 기반의 전투와 유사하다.
특히 <몬스터 트레인>은 전투를
펼칠 필드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세 개의 층으로 분할되어 있기 때문에 각 층 별로 소환할 유닛의 구성을 생각하고, 층 별 전략을 잘 세우는 것이 승리의 열쇠가 된다. 따라서 전투에
있어서 이 게임은 <슬레이 더 스파이어>와는 색다른
전략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특히 <Monster train>
이라는 이름답게, 열차에 끊임없이 올라타고 위로 올라가려는 적들을 막는 일련의 과정은 디펜스
게임의 그것과 유사해서, 전투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고조된다.
전투가 끝나고 다음 길을 선택하는 과정 역시 슬더스랑은 조금 다르게 길이 두 갈래로 간소화되어 있다. 각 길마다 유닛 강화, 주문 강화,
카드 보상, 특별 이벤트 등의 보상이 랜덤하게 2~3개
씩 묶여서 나온다.
![]() |
길은 두 갈래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
![]() |
길가다 만나는 이벤트는 슬더스랑 유사하다. |
카드 강화 시스템은 강화 효과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슬더스랑은 다르게 다양한 강화 효과가 존재한다. 유닛 및 주문 카드에 특정 키워드를 붙이거나 코스트를 감소시키거나, 능력치 증가를 시키는 등 다양하게 강화할 수 있는데, 한 카드 당 많으면 강화를 세 번까지 할 수 있어 처음 받은 카드와는 아예 다른 카드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특히 이 게임은 카드 하나하나의 밸류들이 높지 않은데 강화 효과와 유물의 밸류는 말도 안 되게 높기 때문에, 이 강화 효과를 잘 조합하여 판을 이끌 수 있는 ‘캐리형 카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슬더스가 카드 하나하나를 중요하게
사용하며 덱 전체를 가다듬고 큰 그림을 보면서 덱 빌딩을 해나간다면, <몬스터 트레인>은 강화를 통해 덱의 ‘키 카드’를 몇 개 만들고 그 키 카드와 강한 유물의 시너지를 내면서 게임을 풀어나간다.
![]() |
다양한 강화 효과가 있다. |
![]() |
게임 처음 시작할 때 주는 '챔피언' 하수인도 따로 강화 가능하다. |
정리하자면 <몬스터 트레인>은 로그라이크 덱 빌딩 장르로써 ‘슬더스’와 유사점은 있지만, 전투 방식이나 덱 빌딩 방식에 있어서 슬더스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해줄 수 있는 게임이다. 기존에 나왔던 발전 없는 양산형 ‘Slay-like’ 게임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몬스터 트레인>이 ‘Slay-like’를
넘어 ‘Train-like’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일단 로그라이크 게임인데 반해 만나는 적들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재로써는 게임을 반복해도 보스들이 추가적으로 쓰는 배틀 기믹만 약간씩 다를 뿐, 기본적으로는 같은 패턴을 지닌 같은 적들과 마주하게 된다. 슬더스의
‘승천’에 해당하는 ‘Covenent’
단계도 25단계나 있고 클리어마다 해금되는 카드도 슬더스보다 많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반복 플레이 과정에서 매번 같은 전투를 경험한다는 건 로그라이크 게임에서 치명적인 요소 중 하나다.
![]() |
질리도록 만나게 될 보스 |
또한 클랜 간 밸런스가 아쉽다. 플레이어는 매 판을 시작할 때 총 5개의 클랜 중 2개를 선택하게 된다. 클랜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 풀이나 유물 등이 전부 다르고 각 클랜마다 주요한 컨셉 등이 있다. 그러나 Umbra 클랜의 Morsel 컨셉이라든지, Stygian guard 클랜의 frostbite 컨셉 등, 해당 클랜 카드 풀의 상당 수를 차지하고 있는 컨셉 자체가 많이 약해서 해당 클랜으로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 |
저마다의 독특한 컨셉을 지닌 5개 클랜 중 두 개를 조합. |
따라서 <몬스터 트레인>을 2만원을 주고 살만한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직 ‘글쎄요’에 가깝다.
그러나 <슬레이 더 스파이어> 역시 초반에 난잡했던 밸런스를 패치하고 신규 캐릭터 등의 컨텐츠와 모드 지원 등을 하면서 ‘Slay-like’의 시작점이 되었던 것처럼, <몬스터 트레인> 역시 밸런스와 컨텐츠 확장 부분에서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한다면 ‘Train-like’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이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된다.
참 재밌는 게임
답글삭제